7세기의 고분시대 후기, 기후현 도노지방에서는 산의 경사면을 깎아서 만든 움가마에서, 토기와는 다른 성질의 도자기 「스에키」가 만들어졌다. 그것이 미노 도자기의 기원으로 알려져있다.
그 후, 헤이안시대 10세기 초부터, 도자기 가마를 사용하고 「백자」로 불리는 회유를 바른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것들은 중국의 탕・송 시대의 우수한 백자를 베낀 것으로, 귀족이나 사찰 등에 유통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자의 생산은 헤이안 시대 말경부터 쇠하기 시작하고 유약을 바르지않고, 오로지 밥그릇과 작은 접시만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 도자기는 「야마차완」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도자기가 서민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과 국내 각지에서 생산이 시작된 것 때문으로 여겨진다. 또,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까지(13~15세기) 걸쳐서, 인접한 세토 가마에서 구워지고있던 「고세토」라고 불리는 회유나 철유를 바른 술병, 사이호 등과 같은 종류의 도자기도 갯수는 적지만 만들어지고 있었다.
15세기말의 전국시대가 되면서, 그동안의 움가마와는 구조가 크게 달라지고, 열효율도 좋아진 오가마가 출현한다. 아즈치모모야마시대까지 약 130년간 사용되어, 제품의 종류에 따라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전기에는 회유와 철유를 바른 제품을 만들었고, 오늘날보다는 다화도가 성행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수입되던 도자기를 베낀 밥그릇이나 차를 넣어두는 그릇, 꽃병 등이 구워지고 있었다. 후기에는 차도가 성행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키세토」, 「세토구로」, 「시노」등이 생산되고, 차세대의 「오리베」에 이르기까지 가장 화려한 미노 모모야마 도자기의 시대를 맞이한다.
1605년경, 오가마와는 다른 대량생산이 가능한 연방식 노보리 가마가 사가현의 가라츠에서 도입됐다. 소성실(도자기를 굽는 공간)이 계단식으로 여러개 늘어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아래 공간의 남은 열기를 윗공간에서 이용하면서 차례로 굽기 때문에 열효율이 훨씬 좋아졌다. 미노에서 최초로 도입된 가마는 도키시 쿠지리의 모토야시키 가마였다. 이 가마에서 오리베가 구워지고 그동안의 상식을 깬 모양과 기하학적이고 참신한 무늬를 가진 도자기가 많이 만들어졌다. 다소 뒤늦게, 청자를 본뜬 아부케 유약의 도자기도 만들어졌다.
이러한 다도와의 연관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서민을 위한 도자기 생산으로 전환되었다. 에도시대 중기에는 철유를 쓴 일회용 식기 등이 대량생산되면서 에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판매되고 있었다. 또, 에도 시대 후기의 분카・분세이(1804년~1829년)때는 미노에서도 도자기의 생산이 시작되고 있다.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미노 도자기의 생산·판매가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 도자기를 굽는 사람과 도자기 상인이 증가했다. 제품은 청화자기가 주류를 이루고, 대량생산하기 위해 그림・무늬도 복사가능한 기술이 개발되고 손으로 하는 묘기가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히 개최되던 만국 박람회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았다. 특히 카토 고스케, 니시우라 엔지가 높은 평가를 받고 수출도 성행되었다.
1914년에 일어난 제 1차 세계 대전 때에는 교전국의 생산 감소, 공급 부족으로 전쟁의 시작과 함께 세계 시장에 진출하면서 호황을 맞아, 이 기세에 힘입어 생산업자는 증가하고 공장 시설도 확장되었다. 가마는 연방식 노보리 가마에서 근대적인 석탄 가마로 전환, 모양에 관해서는 전동 녹로의 사용에 박차를 가했다.
1931년 만주 사변 발발 후, 중일 전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군수 산업이 우선시 되면서, 석탄이 부족해지고 석탄 가마로 이행하고 있던 업계는 궁지에 몰렸다. 이어 가격등통제령에 따른 물가가 동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무역 단절 등으로 많기 업체는 기업 정비령에 의한 전업 또는 폐업을 면치 못했다.
종전 직후, 도자기 업계도 큰 타격을 받았지만 그 생산을 다시 촉구한 것은 피해지에서의 주문이었다. 그러나, 석탄의 부족은 전쟁시와 변함이 없었고, 처음엔 그 확보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쇼와 30년대에 들어서자 고도 경제 성장의 파도를 타고 미노 도자기는 해마다 생산이 늘고, 생산 기술의 진보와 유약을 바르고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도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우와에츠키 기법의 향상 등을 이루어냈다.
근년에 이르러 버블 경제 이후 장기 불황과 중국 등 값싼 도자기 생산지의 대두,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등으로 대량 생산이 주력이었던 미노 도자기 업계는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현재는 값싼 외국 제품에 대응하기 힘든 다품종 소량 생산 전환 등으로 미노 도자기의 재생이 시도되고 있다. 한편, 타 업종과의 교류 및 산업 관광 등 다면적인 대응도 이루어지고 있다.
미노 도자기는 1300년이라는 전통과 역사를 기초로 하여 새로운 산지로 크게 바뀌고 있다.
키세토
모모야마 시대에 미노에서 만들어진 황색의 도자기. 오래 전부터 세토에서 구워진 것으로 알려져서 이 이름으로 불리지만, 쇼와 첫 해에 이 도자기들은 모모야마 시대에 미노에서 구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사발이나 무코우즈케(가이세키 요리 등에 사용되는 소형의 대접) 등의 식기류 외에도 하나이레(차도구의 일종), 향로 등이 있으며 담반의 녹색이나 철채의 차를 어울리는 것도 있다.
세토구로
모모야마 시대에 미노의 오가마에서 구워진 히키다시구로 기법의 도자기. 키세토와 마찬가지로 세토에서 구워졌다고 오인됐던 것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키세토가 식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면, 세토구로는 찻잔만을 만들었다. 연소 중인 가마 속에서 꺼내어 급랭함으로써 그 칠흑같은 색을 만들어낸다.
시노
모모야마 시대에 미노의 오가마에서 구워지고 장석 유약(시노 유약)을 칠한 흰색을 기초로 한 도자기로 밥공기나 하나이레, 무코우즈케, 사발 등이 있다. 기법에 의해서 무지시노, 에시노, 베니시노, 아카시노, 네즈미시노, 네리아게시노로 나뉜다. 에시노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붓을 사용해서 무늬를 그렷다.
오리베
17세기 초에 미노의 연방식 노보리 가마에서 구워진 참신한 도자기. 오리베는 게이초 연간에 천하 제일의 다도 선생인 후루타오리베쇼우시게노리(1544~1615)의 수령 이름에서 불리우게 되었다. 밥공기 외, 무코우즈케와 사발 등의 가이세키 식사 도구를 많이 볼 수 있으며 기법에 의해 아오오리베, 소오리베, 아카오리베, 나루미오리베, 시노오리베, 쿠로오리베, 오리베구로 등으로 나뉜다.